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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해파랑길

수촌대장 2015. 1. 12. 09:37

어느잡지 기사를 스크렙하였음.


이른 아침, 버스가 한계령 터널을 넘어서자 서늘한 해풍에 갯내음이 물씬 느껴진다. 이 때문에 영동지역은 늘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기대를 하게 만든다. 오늘은 미디어투어의 일환으로 각종 미디어 기자단과 여행 블로거, 사진작가들이 모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걷기 코스인 '해파랑길' 중 고성에 있는 일부 코스를 걷는 날이다.해파랑길은 동해안의 긴 해안선을 걷는 길로, 말하자면 '호랑이 등뼈를 타고 걷는 길'이다.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 조성하기 시작해 현재 많은 구간이 조성을 마쳤고, 2014년까지는 모든 구간을 완벽히 조성할 예정이다. 총길이는 무려 770여 km. 우연하게도 백두대간의 길이와 비슷하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서울-부산 거리가 420여 km인 것과 비교하면 실로 대단한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해파랑'이란 이름의 뜻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그리고 '~와 함께'라는 조사의 '랑'을 합친 말이다. 조합해 보자면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란 뜻이다.770여 km,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걷기 길처음 걸을 코스는 해파랑길 47코스. 정식 47코스는 삼포해변~철새전망타워~송지호~가진항까지다. 총 9.9km에 이르는 코스지만 이날은 철새전망타워부터 왕곡마을까지 5km 구간만 걸었다. 이왕 걷는 김에 한 번에 모조리 다 걸어보고 싶지만, 오후에 49코스도 걸어야 한다.철새전망타워를 정면으로 보며 오른쪽으로 틀어 소나무가 가득한 솔길을 걷는다. 7번국도가 나란히 달리는 한편 소나무 사이로는 송지호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갑작스런 손님들의 방문에 놀랐는지 곳곳에서 철새들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겨울이라 한가롭게만 보였던 호숫가에 이미 여러 손님들이 와 있었던 것이다. 7번국도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오른쪽의 해안가엔 그 유명한 '송지호오토캠핑장'이 있다.300여 m를 더 걸으면 걷기 길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것이 요상하다. '해파랑길'의 이정표 대신 '송지호 둘레, 산소길'과 '관동별곡 8백리 길'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이곳은 해파랑길이기도 하고 산소길이기도 하고 관동별곡 8백리 길이기도 합니다."이날 걷기를 가이드 한 '한국의 길과 문화' 윤문기 사무처장의 말에 따르면 강원도에는 여러 걷기 길이 조성되어 있어 서로 중복되는 구간이 꽤 있다고 한다. 산소길은 강원도청에서, 관동별곡 8백리 길은 고성군청에서, 해파랑길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 길인데, 명소들을 거쳐 길을 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부 길이 겹치게 되었다는 것. 송지호를 끼고 있는 길이 좋고 볼거리가 많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여러 갈래의 길이 중복되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길이 중복해서 생길 필요가 있나 싶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도로에도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가 있듯이 걷기 길도 그렇게 특징에 따라 세분화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개통식만 번지르르하게 해놓고 그 이후로는 전혀 관리를 하지 않는 '보여주기 식 길'이 아니란 전제 하에서 말이다.해파랑길은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제 송지호는 점점 멀어진다. 호숫가 근처 습지에서 몸을 뉘는 갈대가 서정적이다.콘크리트길을 따라 계속 걷자 이윽고 도로와 만난다. 왕곡마을 초입이다. 강릉 최씨, 강릉 함씨 집성촌인 왕곡마을은 영동지방에서 '행세깨나 했다'는 부유층의 가옥인 북방식 'ㄱ'자형 겹집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무엇보다 왕곡마을은 한국전쟁도 무사히 넘어갔고, 1996년 고성 대화재 때에도 온전하게 제 모습을 지킨 마을이다. 요즘에는 전통민속놀이 체험과 전통한옥 체험으로 좀더 유명해지고 있다.돌담을 따라 걷는 기분이 꽤 여유롭다. 초가집의 지붕을 보수하기 위해 마당에 널어놓은 짚더미가 한 더미다. 겨울 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다."재주 좋으면 나무에 열린 감도 따 잡숴! 까치밥으로 주기엔 너무 많어!"마을회관 앞에서 소일거리하던 할아버지는 아직도 감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감나무를 가리키며 호의를 베푼다. '용기 있는 자 홍시를 얻으리니', 일행 중 한 명이 감나무 밑에서 있는 힘껏 폴짝 뛰어 탐스런 감을 손에 넣었다. 감을 조금씩 맛본 일행의 입에서 연방 "달다, 달다" 소리가 터져 나온다. 빨간 홍시도, 넉넉한 시골마을의 인심도 참 달기만 하다. 47코스는 마을 내 오봉막국수를 끼고 오른쪽으로 가 공현진항을 지나 가진항에서 끝난다.3개의 걷기 길이 모두 선택한 명소점심식사를 하고 이어 걸은 코스는 해파랑길 49코스 중 일부로, 거진항에서 출발해 해맞이산책로~화진포산을 지나 화진포해양박물관까지 걸었다.거진항은 대진항과 더불어 1970~1980년대만 해도 명태잡이로 유명했던 항구다. 명태잡이철이면 전국의 배들이 거진항으로 몰려들었다. 탄광이 한창이던 태백, 영월 등이 그랬듯이 거진항도 시쳇말로 "지나가는 개들이 천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닐 만큼" 풍족한 동네였다. 하지만 이 과거의 영광 역시 이제는 소주 한 잔에 안주처럼 꺼내놓는 옛 이야기일 뿐이다. 해수온도 상승으로 명태 잡히는 곳이 점점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지금은 그저 여느 항구처럼 적당히 분주하고 적당히 한가로운 곳이 되었다.거진항에서 화진포산을 올라가는 길은 꽤 멋있는 산책로다. 자작나무며 소나무가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전해지는 비릿한 바다냄새는 특히 겨울에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이곳은 '거진 해맞이봉 산림욕장'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바닥과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이정표 역시 잘 되어 있어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약 20분을 걸으니 바닷가 절벽에 얹어놓은 듯한 전망대가 나타났다. 앞으로 펼쳐지는 동해바다의 풍광이 절경이다. 파란 바다는 하늘과 희미한 지평선을 그어놓고 일렁이고 있었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이른 아침, 가장 짙은 어둠을 지나고 기지개 켜듯 붉은빛을 쏟아내는 동해 일출의 장관을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다.